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스 마에스트리 (문단 편집) === KBO 진출 전 === 2005년 [[이탈리아 야구리그]]의 산마리노 베이스볼 클럽에 입단했고, [[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|2006년 제 1회 WBC]]의 [[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]]에 선발돼 [[마무리 투수|마무리]]를 맡았다. WBC에서 눈도장을 찍어 [[시카고 컵스]]와 [[마이너 리그 베이스볼|마이너]] 계약을 맺었다. 2009년부터 [[중간계투]]로 활동하다가 결국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|메이저리그]]에 데뷔하지 못한 채 2011년 4월 [[시카고 컵스]]에서 방출됐다. 방출된 후 미국 독립리그 팀인 링컨 솔트 독스, 호주의 브리즈번 밴디츠 등 팀을 거쳐 2012년 3월 일본의 독립리그 [[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]]의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에 입단했다. [[마무리 투수|마무리]]를 맡아 리그 세이브 1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리그가 진행 중이던 7월에 [[오릭스 버팔로스]]와 계약했다. 프란시스코 카라바이요[* 카라바이요도 2010년 오릭스가 영입했다.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고 독립리그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5년 시즌 중에 재입단했지만 시즌 후 방출되고 다시 독립리그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.]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리그 진행 중에 프로 팀에 입단한 선수가 됐다.[* 여담으로 독립리그에서 시즌 도중 계약했기 때문에 연봉이 극도로 낮았다. 약 '''220만엔'''의 NPB 국내선수 최저연봉 이하의 연봉만을 받았고, 첫 등판 시 사용한 글러브는 [[대만]]에서 산 '''5000엔'''짜리 글러브였다는 점 등이 알려지며 어려움이 부각되었다. 물론 당시 1군 최저연봉이 1000만엔이 넘었다는 점에서 마에스트리는 300-400만엔 정도는 1군 등록수당으로 받았을 것이다. 또한 13-15년까지 3년간은 연봉 총액 6500만엔으로 나름대로 받긴 받았다.]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선발로 기용될 예정이었으나, 선발로서는 안정감이 떨어져 2014년부터는 주로 [[중간계투]]로 등판했다.[* 필승조보다는 주로 롱릴리프. 방어율은 14년때 1점대를 찍었고 15년때도 3점대로 나름 준수했었다.] 2015년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. 그 뒤 일본 독립 리그에서 뛰던 중 2016년 3월 15일 [[한화 이글스]]와 [[http://sports.news.naver.com/kbaseball/news/read.nhn?oid=477&aid=0000028403|연봉 2천만엔, 옵션 3천만엔]]의 조건으로 계약했다. 특이하게도 연봉을 [[미국 달러|달러]]($)가 아닌 [[일본 엔|엔화]](¥)로 받는 계약을 체결했는데, 이는 본인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.[* 환전 수수료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. 어차피 몇 달 뛰다가 다시 일본으로 갈 사람이니.] 3월 17일 시범경기에 이기고 있는 상황에 등판해 1이닝 동안은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의외의 기대감을 갖게 하였'''으나''', 이내 다음 이닝에 들어 수비 실책으로 주자가 나간 상황에 [[박정권]]에게 '''만루 홈런'''을 맞는 등 6실점하며 불안한 행보를 보여 주었는데, 원래는 1이닝 정도만 던지는 정도로 예상했으나 갑작스럽게 1이닝을 더 던지게 해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[[http://sports.news.naver.com/kbo/news/read.nhn?oid=382&aid=0000460052|발생한 문제였다고 한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